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브란트 (문단 편집) == 출생과 성장 == [[독일 제국]] 직할주였던 [[엘자스-로트링겐]]에 속한 알사스 지방의 뮐하우젠(현재는 [[프랑스]]령)에서 태어난 카를 브란트는 드레스덴 대학, 예나 대학, 프라이부르크 대학, 뮌헨 대학, 베를린 대학 등 여러 대학들을 전전하면서 의학을 공부해 베를린 대학에 재학중이던 1928년에 의사시험에 합격해 면허취득 후 1929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. 1932년 3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브란트는 처음엔 돌격대에 입대했다. 1933년 8월 15일에 [[아돌프 히틀러]]의 부관이던 [[빌헬름 브뤼크너]]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을 때, 브란트가 그를 수술하여 그를 회복시켰다. 이 사실이 히틀러의 귀에 들어가 히틀러는 그를 개인 주치의로 임명하려고 했다. [[파일:external/spartacus-educational.com/GERbrandtK3.jpg]] 결혼식 당시의 카를 브란트. 좌측부터 [[아돌프 히틀러]], 아내, 본인, 빌헬름 브뤼크너, [[헤르만 괴링]]. 1934년 3월 1일에 친위대로 이적한 브란트는 총통부 의사로 임명되어 히틀러의 측근이 되었다. 1934년 7월 29일에 정식으로 친위대 요원이 된 브란트는 1940년까지 친위대 본부에서 근무했다.최종계급은 [[슈츠슈타펠]] [[중장]] 및 [[무장친위대]] [[소장(계급)|소장]]. 1934년 3월 17일에는 독일의 수영 선수 안니 레본(Anni Rehborn)과 결혼했고 1935년 10월 4일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따서 카를 아돌프 브란트(karl adolf brandt)라는 아들을 낳았다. 그 이후에 히틀러의 의사가 된 브란트는 히틀러의 주치의로써 활동하면서 히틀러의 연인 [[에바 브라운]]이나 히틀러의 주변 인물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하며, 히틀러와는 굉장히 신뢰하는 관계여서 히틀러는 그를 가족 같이 여겼다고 한다. 그렇게 히틀러의 측근이 된 그는 [[하인리히 힘러]], [[마르틴 보어만]], [[헤르만 괴링]], [[알베르트 슈페어]]와 같은 히틀러의 핵심 측근들과도 매우 많이 아는 사이가 되었고, 히틀러가 자주 가는 오버잘츠베르크 별장에서 오버잘츠베르크 서클이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갈 정도로 나치당에서 가장 위치가 높은 의사였다. || [[파일:external/spartacus-educational.com/GERbrandtK5.jpg]] || [[파일:external/spartacus-educational.com/GERbrandtK6.jpg]] || || 카를 브란트와 [[에바 브라운]] || 카를 브란트와 [[아돌프 히틀러]] || 여기까지만 요약하면 평범한 의사의 출세 이야기겠지만... '''그 이후 악마가 된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